Rdworks Lab 208 레이저 렌즈에 구멍을 뚫자, 커팅의 상식이 무너졌다
레이저 렌즈에 구멍을 뚫자, 커팅의 상식이 무너졌다
레이저 커터 사용자라면 누구나 완벽한 절단을 향한 끝없는 여정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물리학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70와트 레이저로 26mm 두께의 단단한 나무를 잘랐는데 그 절단면이 거의 완벽하게 수직인 경우처럼 말입니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렌즈의 초점을 지난 빔은 급격히 퍼지면서 힘을 잃어야 하는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처럼 작업 현장에서의 작은 관찰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렌즈는 빛을 한 점으로 모은다'는 기본 모델에 의문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문은 렌즈의 작동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 보는, 하나의 급진적인 가설과 파괴적인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렌즈의 심장에 구멍을 뚫는 순간, 레이저 커팅의 새로운 진실이 드러납니다.

1. 렌즈는 하나가 아니다: 커팅과 인그레이빙,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렌즈
핵심 이론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 하나의 렌즈가 실제로는 두 가지의 분리 가능한,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모델에서는 렌즈 전체가 단 하나의 초점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했지만, 관찰된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인그레이빙(Engraving) 특성: 렌즈의 주변부를 통과하는 빛이 굴절되어 날카로운 한 점으로 모이는 기능입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점'의 역할을 하며, 표면에 정밀한 마킹을 할 때 사용됩니다.
- 커팅(Cutting) 특성: 렌즈의 중심축을 그대로 통과하는 고강도의 에너지 빔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빔은 전통적인 초점과는 별개로, 재료를 깊이 파고드는 절단 능력을 담당합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하나의 렌즈 안에 공존하지만, 서로 다른 원리로 작동하며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렌즈에 두 가지 특성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그레이빙 특성이 있고, 중심축을 따라 더 깊게 뻗어 나가는 별개의 초점에 의존하는 커팅 특성이 있습니다.
2. 힘보다 중요한 것: 파워가 아닌 '광도(Intensity)'의 비밀
많은 사용자들이 더 나은 커팅을 위해 무조건 레이저의 출력(와트)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커팅 효율을 결정하는 것은 총 출력이 아니라 단위 면적당 힘, 즉 **광도(Intensity)**입니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광도 = 파워 / 면적 입니다. 이 간단한 원리가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30와트의 K-40 레이저 기계가 인상적인 커팅 성능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빔 직경이 4mm 정도로 작아 에너지가 매우 높은 강도로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더 높은 출력을 가진 기계라도 빔 직경이 9mm로 넓다면, 에너지가 더 넓은 면적에 분산되어 광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커팅 효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보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작은 지점에 에너지를 집중시키느냐입니다. 이 원리가 바로 단순히 파워를 높이는 것이 항상 더 나은 커팅으로 이어지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이론은 검증되기 전까지는 그저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이 파격적인 렌즈 이원론을 증명하기 위해, 렌즈를 말 그대로 해부하는 두 가지 간단하면서도 파괴적인 실험이 설계되었습니다.
3. 렌즈를 해부하다: 중심은 '커팅'을, 주변부는 '초점'을 맡는다
- 실험 1: 렌즈 중앙에 구멍을 뚫다 (The Hole) 렌즈의 정중앙에 구멍을 뚫어 중심축을 제거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렌즈의 깊은 절단 능력이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원래 렌즈가 시간차 펄스 테스트에서 재료를 14~15mm 깊이까지 뚫을 수 있었던 반면, 구멍 뚫린 렌즈는 고작 2mm밖에 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표면에 인그레이빙하는 능력은 완벽하게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렌즈의 중심축이 커팅 파워를 전달하는 핵심 통로임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 실험 2: 렌즈 중앙만 남기다 (The Spot) 반대로 렌즈의 주변부를 모두 가리고 중앙의 3mm 지름 부분만 남겼습니다. 이번에는 렌즈가 빛을 날카로운 한 점으로 모으는 능력, 즉 초점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초점 테스트에서 나타나는 선 두께의 변화 폭이 정상 렌즈의 경우 0.6mm에 달했지만, 이 렌즈는 0.15mm로 거의 평탄하게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재료를 깊게 파고드는 커팅 능력은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이 두 실험은 렌즈의 '커팅 기능'과 '인그레이빙(초점) 기능'이 물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두 렌즈가 보여준 결과는 이론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한 렌즈는 '이걸로는 초점을 맞출 수 있지만, 자를 수는 없다'고 말하고, 다른 렌즈는 '이걸로는 자를 수 있지만,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고 말하는 셈이니까요.
4. 완벽한 렌즈는 없다, 오직 '타협'만 있을 뿐
이 이중 기능 모델은 우리가 렌즈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방식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모든 렌즈는 중심부에 커팅을 담당하는 강력한 에너지 '스파이크(spike)'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그레이빙 전용' 렌즈나 '부드러운' 렌즈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소위 4인치 렌즈처럼 '부드러운' 인그레이빙 렌즈라 불리는 것조차도 그 중심에는 재료를 깊게 파고드는 강력한 에너지 스파이크를 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코 부드럽지 않습니다. 관리하지 않으면 재료를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도구일 뿐입니다. 인그레이빙 작업 시, 표면만 살짝 태우고 싶은데 이 중심 스파이크가 재료 속을 깊게 파고들어 원치 않는 톱밥을 만들어내며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인그레이빙 렌즈나 커팅 렌즈 같은 것은 없습니다. 렌즈는 타협의 산물입니다.
5. 상식을 파괴하는 빔: 초점 아래에서도, 반사되지도 않는다
이 실험들은 렌즈에 대한 우리의 이해뿐만 아니라 레이저 빔의 행동에 대한 두 가지 흔한 오해를 바로잡아 줍니다.
- 신화 1: 빔은 초점 이후에 급격히 약해진다 (The Divergence Myth) 기억하시나요?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절단면이 거의 평행했던 26mm 두께의 나무 말입니다. 바로 그 결과가 이 신화를 반박하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만약 빔이 초점을 지나자마자 급격히 퍼지면서 힘을 잃는다면 이런 결과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강력한 중심 빔이 초점 아래에서도 상당 거리 동안 힘을 유지한다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 신화 2: 빔은 재료 표면에서 반사된다 (The Reflection Myth) 비스듬히 놓인 아크릴 블록에 빔을 쏘는 실험에서, 빔은 표면에서 반사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재료를 '먹어 들어가며' 비스듬한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은 빛의 '반사(reflection)'가 아니라, 재료가 순식간에 기화하는 '증발(evaporation)' 현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모든 여정은 교과서가 아닌, 작업 현장에서의 '뭔가 이상하다'는 작은 관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도구들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비밀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오직 '왜?'라고 용감하게 질문하고, 때로는 상식의 한가운데에 기꺼이 구멍을 뚫어볼 때만 풀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