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각인은 거짓말을 한다:
그레이스케일 사진 각인의 충격적 진실
서론: 완벽한 사진 각인의 꿈
모든 것은 한 사용자로부터 받은 의문스러운 .rld 파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파일 속 이미지는 분명 흑백 점으로 이루어진 '디더링(dithered)' 방식이었지만, 설정은 여러 단계의 출력을 조절하는 '그레이스케일(grayscale)'로 되어 있었습니다. 흑과 백, 단 두 가지 값만 존재하는 이미지에 어떻게 여러 단계의 회색조를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처음엔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튜토리얼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현실적인 퍼즐에서 시작해, 오실로스코프라는 정밀 장비로 기계의 심장부를 들여다보며 그레이스케일 사진 각인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깊이 있는 탐구의 여정입니다. 소프트웨어의 착시부터 전자 신호의 한계, 그리고 물리적 현실의 벽까지, 우리가 믿었던 상식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함께 확인해 보시죠.

1. 소프트웨어의 착시: 가짜 그레이스케일의 발견
첫 번째 발견: 소프트웨어는 당신을 속이고 있다
저의 첫 번째 가설은 이것이었습니다. ‘어쩌면 RDWorks 소프트웨어가 디더링된 이미지에 우리가 모르는 추가적인 회색 정보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
실험을 위해 RDWorks에서 이미지를 디더링 처리하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소프트웨어 미리보기 화면에는 원본 흑백 점 이미지에 없던 여러 음영이 나타났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검은색, 흰색, 그리고 두 단계의 어두운 회색과 밝은 회색, 총 6가지 음영이 보였습니다. 마치 소프트웨어가 그레이스케일 정보가 있는 것처럼 우리를 현혹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오실로스코프로 레이저에 전달되는 실제 신호를 측정했을 때, 진실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화면에 보이던 여러 단계의 회색 음영과 관계없이, 레이저에 전달되는 신호는 오직 '켜짐(on)'과 '꺼짐(off)'이라는 두 가지 상태, 즉 흑과 백뿐이었습니다.
RDWorks는 회색 음영을 보여줄 때 사실 당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림에는 회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충격적인 첫 번째 발견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그럴듯한 미리보기를 제공하지만, 디더링된 이미지에 그레이스케일 설정을 적용해도 실제로는 단순한 흑백 신호만을 출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전자 신호의 한계: 속도의 비밀을 풀다
두 번째 발견: 이론상 완벽한 신호, 그 속도의 한계
소프트웨어의 착시를 확인한 후, 다음 단계는 '진짜' 그레이스케일 신호를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지 처리 방식을 'dot graphic'(디더링)에서 'grayscale'로 변경하자, 마침내 레이저는 각 픽셀마다 출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가변적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실로스코프 파형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통해 이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은 얼마나 빠른 속도까지 각 픽셀의 정보를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속도를 바꿔가며 신호를 측정했습니다. 핵심은 각 픽셀이 처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었습니다.
- 50mm/s: 1mm를 이동하는 데 20밀리초(ms)가 걸립니다. 120ppi 해상도는 mm당 4.72픽셀이므로, 한 픽셀을 처리하는 데 약 4.23ms가 소요됩니다. 오실로스코프에서도 이와 거의 일치하는 신호를 명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 200mm/s: 같은 계산으로, 한 픽셀당 처리 시간은 약 1.06ms로 줄어듭니다. 신호의 간격은 좁아졌지만 여전히 개별 픽셀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속도를 계속 높여 테스트한 결과, 시스템이 반응할 수 있는 전자적 한계는 약 300mm/s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한 픽셀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50마이크로초(0.75ms)**였습니다. 하지만 속도를 400mm/s로 올리자(픽셀당 약 0.5ms), 신호들이 서로 뭉개지기 시작하며 더 이상 개별 픽셀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론적으로는 300mm/s까지 완벽한 그레이스케일 제어가 가능한 셈입니다.
3. 물리적 현실의 벽: 이론이 실패하는 이유
세 번째 발견: 완벽한 신호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
전자적으로는 750마이크로초 단위의 완벽한 픽셀 신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드디어 완벽한 사진 각인의 비밀을 푼 것 같아 흥분됐죠. 하지만 왜 실제 그레이스케일 각인 결과는 좋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거대한 물리적 현실의 벽이 존재합니다.
1. 하드웨어 반응 시간의 한계
제어기에서 보낸 완벽한 신호는 고전압 파워 서플라이(HV power supply)와 레이저 튜브를 거쳐 실제 레이저 빔으로 변환됩니다. 이 과정에는 물리적인 반응 시간이 필요합니다. 750마이크로초라는 극도로 짧은 픽셀 신호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왜곡되거나 뭉개져 버릴 수 있습니다. 즉, 제어기가 보낸 정밀한 신호와 튜브에서 나오는 실제 출력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제어기에서 750마이크로초 단위의 완벽한 픽셀 신호를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저 튜브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2. 재료의 번인(Burn) 특성
각인 속도가 빨라질수록 레이저 빔이 한 지점에 머무는 시간은 극도로 짧아집니다. 이는 각인되는 점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며, 동시에 점에 가해지는 에너지가 약해짐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미세한 출력 차이로 섬세한 음영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약한 출력의 회색과 더 약한 출력의 회색 사이의 차이를 재료 위에 물리적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4. 최종 결과: 처참한 실패와 교훈
네 번째 발견: 결과는 '끔찍했다'
이론적 한계를 파악한 후, 실제 사진 각인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한마디로 처참했습니다. 완성된 각인물은 디테일이 전혀 없이 "끔찍하고(hideous)", 전체적으로 "흐릿했으며(fuzzy)",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릴 만한(worthy of a trip to the dust bin)" 수준이었습니다.
수많은 실험과 분석을 통해 얻은 최종 결론은 명확하고 강력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좋은 품질의 사진 각인을 원한다면, 그레이스케일 방식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괜찮은 사진을 원한다면 그레이스케일 근처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사진을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점(dots)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5. 그레이스케일의 진짜 용도
마지막 발견: 그렇다면 그레이스케일은 어디에 쓰는가?
그렇다면 이 그레이스케일 기능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실험을 통해 이 기능이 애초에 사진 각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케일 기능의 진짜 목적은 3D 각인입니다. 즉, 이미지의 명암에 따라 각인의 깊이를 조절하기 위한 기능입니다. 이미지의 흰색 부분은 표면에 가깝게 얕게 각인하고, 검은색 부분은 더 깊게 파내는 방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 사진이 아닌, 깊이 정보를 담아 특별하게 제작된 '뎁스 맵(depth map)' 이미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일반 인물 사진을 사용하면 검은색인 눈동자 부분이 가장 깊게 파여 기괴한 모습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결론: 기계의 경계를 이해한다는 것
하나의 의문스러운 파일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소프트웨어의 화면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전자 신호의 한계를 측정하며, 물리적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이 영역을 깊이 파고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최종 각인물은 실패했지만, 이 탐구는 그 자체로 성공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오실로스코프와 같은 도구는 막연한 추측이 아닌,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기계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확한 '경계'를 알려주었습니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도구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의 디지털 약속과 물리적 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모든 메이커에게 진정한 성장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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